- 发布日期:2021-3-16 10:32:55
- 发布人:료녕일보
70여년 전, 료심전역이 영웅의 도시-금주에서 벌어졌다. 료심전역은 중국인민해방전쟁에서 결정적 의의를 갖고 있는 ‘3대전역’중 첫번째 전역으로서 중국의 앞날을 결정짓는 대결전 가운데 하나였고 이는 회해전역, 평진전역의 승리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에 이바지했다.
1948년 가을, 당중앙은 전략적 결전의 첫번째 전장으로 동북을 선택했다. 1948년 9월 12일, 동북야전군 주력은 료심전역을 발동하여 선후로 창려, 북대하, 수중, 흥성을 공략했고 의현을 점령했으며 금주를 고립시켰다. 10월 9일부터 동북야전군은 금주 외곽의 거점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10월 14일, 동북야전군은 25만여명의 우세병력을 집중시켜 금주를 총공격했고 31시간의 혈전 끝에 금주를 점령했다. 전사들은 피와 생명으로 이 도시의 새로운 기반을 다졌다.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우리 군은 전면 출격해 흑산, 대호산, 신민지역에서 국민당군의 ‘서진병퇀’을 전멸했다. 동북야전군은 승세를 타고 심양, 영구로 진군했다. 11월 2일, 심양과 영구가 해방됨에 따라 료심전역은 승리를 거두었고 동북 전역이 해방됐다. 9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52일간의 시간을 거친 료심전역은 총 47.2만여명 적군을 섬멸했다.
료심전역기념관 류효광 관장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료심전역은 동북군민이 당중앙의 전략적 배치에 따라 거둔 위대한 승리로서 당의 지휘를 받고 당에 충성하는 정치본색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를 거두려는 정치적 담당을 보여주었다. 료심전역기념관은 현재 금주의 홍색명함으로 됐고 매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참관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력사의 초연이 흩어진 현재의 금주는 아름답고 살기 좋고 활력이 가득한 현대화 항구도시로 거듭났다. ‘13.5’시기 금주의 경제지표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고 공업은 ‘8+3’ 산업배치를 형성했으며 농업산업체계가 기본적으로 형성됐고 ‘스마트 금주’, ‘지련금성(智联锦城)’, ‘기업 클라우드’가 새로운 발전모식과 경영방식으로 됐다. 또한 금주시는 국가위생도시로 명명됐다.
료녕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