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发布日期:2022-2-22 14:05:32
- 发布人:료녕신문
- 김정진
조선인에서 중국공민으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조선족은 새중국 창립 전에는 조선인으로 불리웠다.
1938년 10월 관내 무한에서 조선의용군이 건립되고 조선독립동맹이 조직됐다. 조선인 혁명가들은 관내와 동북지대에서 항일혁명운동을 전개했고 농호들은 목단강, 송화강, 료하 류역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수전을 만들고 벼농사를 지으며 고생스레 살았다.
1945년 항일전쟁 승리후 몇년 안지나 조선인 농호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토지개혁에서 논밭과 집 등을 분배받아 땅의 주인으로 되였고 청년들은 용약 참군하여 중국인민해방전쟁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새중국 창립후 재중국 조선교민들은 중국공민으로 인정되였고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의 하나로 되였다.
료녕신문, 우리의 발자취였다
우리글 료녕신문은 지난 1958년 당의 민족정책하에 유지인사들의 공동 노력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처음은 조선문농촌판으로 시작해 두번 페간되고 복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성내 조선족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장장 60여년 세월 속에서 우리 민족의 력사를 기록하고 문화전통을 지켜왔다.
최근 신문에 실린 <우리 신문은 우리가 봐야죠>라는 기사는 신문 주문을 중시하는 조선족사회단체 일군의 메세지를 전달했고 또한 인터넷을 통한 주문방법도 알려주었다. 기사를 읽은 나는 “우리글 신문은 우리 겨레의 발자취이며 이를 아끼고 빛내여 진정한 민족사회의 거울이 되게끔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신문에 실린 우리 겨레 혁명가의 영웅사적과 각 지역 당대표, 인대대표, 정협위원, 로력모범 등의 사적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여러 지역 조선족 문화예술관, 사회단체의 민족전통활동은 우리에게 민족전통의 전승과 발전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더욱이 국제 형세와 국내 당정 대사는 우리의 눈을 밝혀주었다.
지난날과 사명을 잊지 말아야
올해 아흔이 넘은 나는 그동안 료녕신문을 통해 료녕성 조선족사회의 발전상을 료해해왔다.
과거 각 조선족촌마다 소학교가 있고 여러 곳에 조선족중학교가 있었다. 조선족학생들은 문화학습에서 좋은 성적을 따냈으며 문체활동에서도 지역 선두를 차지하면서 칭찬을 받아왔다. 각 지역 정부기관, 사업단위, 기업공장, 농촌향진에 우수한 조선족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우리 조선족들은 수전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최근년에 들어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전 성 조선족 중소학교가 30여개로 줄었고 조선족 공무원들도 입직보다 리퇴직이 더욱 많았으며 대량의 조선족 청장년들이 해외로무로 빠져나갔다. 지난날 오손도손 모여살던 부락이 텅텅 비여 썰렁한 곳으로 변해지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민족 문화의 명맥을 이어주고 민족상을 기록해가는 신문 한장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잘 알아야 조선족사회의 새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나름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 료녕신문을 주문하여 당과 정부의 호소를 마음에 새기고 당대의 사명을 명기하여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중화민족 부흥에 힘을 다하자.